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리 제국 (문단 편집) ==== 슐레이만 케이타 ==== 만사 무사가 1337년에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마간 케이타 1세가 새로운 황제에 올랐다. 마간 케이타 1세는 [[호부견자]]의 전형으로, 폭군 만사 칼리파 이래 최악으로 무능한 황제로 꼽힐 정도로 정치력이 형편없었다. 그러나 만사 무사를 포함한 전대 황제들이 이룩해놓은 황권이 워낙에 강력했던 덕에 마간 케이타 1세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말리 제국에는 별 일이 없었으며 황위는 평화롭게 1341년에 슐레이만 케이타에게 넘어갔다.[* 슐레이만 케이타는 만사 무사의 형제였다. 마간 케이타 1세가 4년 정도 밖에 통치하지 못한 덕에 그나마 손상되지 않은 채로 말리 제국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었다.] 슐레이만 케이타는 즉위 직후부터 마간 케이타 1세가 망쳐놓은 재정을 다시 복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슐레이만 케이타는 황금 채굴량을 늘리고 지중해권 및 아랍권과의 교역로를 확충하였으며, 국내 경제 안정을 위해 내수 시장을 활성화기도 했다. 슐레이만 케이타의 업적은 경제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 군사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능했다. 국외에서는 [[풀라족]]이 타쿠르 지방을 침공해들어오고 내부에서는 전처 [[카사 카시]]가 장군들과 결탁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기도 했으나, 슐레이만 케이타는 이 모든 것을 빠르게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황권이 안정되었음을 과시하기 위하여 만사 무사의 뒤를 이어 성공적으로 [[메카]]로의 성지순례를 완수했고, 이 과정에서 순례길 곳곳에 궁전을 세우거나 [[헤자즈]]에서 가지고 온 신성한 율법 두루마리들을 보관할 도서관들을 건립했다. 만사 무사의 뒤를 이어 말리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슐레이만 케이타가 저지른 유일한 실책은 [[세네갈]] 지역의 딜로프 지방의 반란을 막지 못한 것이었다. 당시 딜로프 지방에 거주하던 토착민들인 올로프족들은 말리 제국에 반란을 일으켜 1350년대에 졸로프 제국을 세워 떨어져 나갔고, 슐레이만 케이타는 이를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리 제국은 당대 서아프리카 최고의 패권국이자 번영을 구가하는 대제국이었으며, 그의 재위기인 1352년에 말리를 방문한 이슬람 탐험가 [[이븐 바투타]]는 말리 제국을 아름답고 강성한 국가로 묘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